[생명의 삶 3/3/2017] 누가복음12: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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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구절인 누가 복음 12장 22-34절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걱정을 지적하십니다.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걱정 속에서 삽니다. 어떻게 하면 걱정과 근심 없이 살수 있을까요? 오늘 구절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걱정하지 말아야 하는 세가지 이유를 말하십니다. 첫째로 이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경영하심을 보라는 것입니다. 작은 동물이나 식물까지 보호하시고 기르시는 하나님께서 더 중요한 인간을 돌보시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둘째로, 걱정해보았자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고 오히려 걱정이 심해지면 마음만 상하고 정작 일을 하기 전에 걱정하는 데 힘을 다 소진해버리고 맙니다. 셋째, 우리가 걱정하는 것을 보면 정말 우리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걱정하는데, 대부분 우리가 걱정하는 것들은 그것들을 위해 우리가 많은 시간과 노력과 정성을 기울인 것입니다. 우리도 모르게 우리는 자녀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말로는 건강하고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이렇게 말하지만, 몇 시에 자는지, 얼마큼 공부하는지, 전화기를 얼만큼 쓰는지, 누구와 만나는지, 무엇을 먹고 누구를 만나는지, 우리는 다 걱정합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 속에 아이들이 얼마큼 놀고 무엇을 입고 어떻게 공부하고 언제 잠을 자고 깨고 하는 것들에 대한 기준이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그 기준에서 벗어난다고 생각될 때마다 우리는 노심초사하고 지적을 하고 훈계를 하든지 화를 내든지 합니다. 아마, 아이들 외에 직장이나 관계에서 우리가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 것들에는 그와 비슷하게 많은 기대치를 가지고 있으며 많은 기대치 때문에 (기대한 것과 다르게 일이 진행될까봐) 많은 걱정을 우리는 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것에 마음과 시간과 돈을 쓰는 사람들은 이 세상의 불안정한 것들에 불안정한 기대를 걸고 불안과 염려와 걱정으로 살아갑니다. 딱 마음대로 모든 일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마음의 중심에 놓고 하나님께 시간과 돈과 노력과 마음을 쓰는 사람들은 걱정할 게 없습니다. 기대할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기대대로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에 놓은 사람들은 그냥 그 분이 우리 기대 이상으로 우리 삶과 관계들을 이끌어나갈 실 거라고 믿기만 하면 됩니다. 진정한 자유는 마음의 두려움과 걱정과 염려로부터의 자유입니다. 그 자유는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우리 보물이 있는 곳에 우리 마음도 있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눅 12:34). 돈은 우리의 인생을 정말 잘 섬겨줄 수 있는 하인 같은 존재지만,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을 돈을 상전으로 모시고 삽니다. 우리가 돈을 우리 마음 중심에 놓고 살 때, 우리는 돈 때문에 걱정하고 돈 때문에 결정하고 돈 때문에 두려워해야 하는, 돈의 노예가 됩니다. 사람들은 흔히 돈을 많이 벌면 돈의 걱정이나 노예 됨에서 자유롭게 된다고 생각하여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까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돈의 노예가 되지 않을 가장 좋은 방법 중에 하나는 돈을 올바르게 쓰는 일입니다. 돈을 자기를 위해 쓰는 사람들은, 돈을 더 쓸수록 돈이 더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돈을 남을 위해 쓰는 사람들은, 돈을 더 쓸수록 돈에 자유로워집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돈을 써보십시오. 갑자기 돈에 대해 자유로워지고, 돈이 이상하게 덜 필요하며 돈이 이상하게 남아도는 것을 경험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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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3/1/2017] 누가복음1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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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 12:1

“참새 다섯이 앗시리온 둘에 팔리우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라도 잊어버리시는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 12:7

바리새인들은 자주 외식하는자, 위선자로 예수님께 비난을 받습니다. 위선자란 무엇입니까? 오늘 구절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누룩에 비유하십니다. 누룩이란 빵을 그 실제 크기보다 더 크게 부풀려 만드는 것입니다. 즉 바리새인들은 진짜 자기보다 자신을 더 위대하고 훌륭하게 보이려 했던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자기 홍보 (Self-Promotion)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다 위선의 세대인 듯 합니다. 이 세대는 남들에게 자기를 잘 알려야 하고, 잘 알려져야 점수를 따서 이익을 얻습니다. 진짜 하나님 앞에서 그 사람이 누구인 것 보다, 어떤 업적을 이루었고, 이력서에 어떤 것을 쓰고, 어떤 학교를 다녔고,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차를 타고 다니는가가 이 세계에서는 더 중요합니다. 우리는 잠시도 쉬지 않고 자기 스스로 칭찬해야 하고 자기가 한 일들을 사람들에게 뽑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십니다. 아무 중요한 업적이나 평가가 없었던, 정말 시장에서 싼 값에 팔려가는 참새같이 허망하게 살았던, 인생도 하나님께는 잊혀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높게 여겨지지 않고 사람들 입에 오르락 내리락 하지 않아도, 내세울 만한 치적이 없어도, 하나님은 우리가 누구며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다, 한조각도 빠뜨리지 않고, 아십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실제 자기 자신보다 못하게 평가받는 사람이, 실제 자기 자신보다 더 높게 평가받는 사람보다 났습니다. 전자는 하나님 나라에서 그 진가가 드러나고 더 높게 평가받을 것이지만, 후자는, 그 있는 자리에서 일어나 밑에 자리로 내려가라는 소리를 들을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어떤 누룩을 가지고 사십니까? 더 높게 위대하게 훌륭하게 자기를 보이려고 하는 모든 노력들에 지치지 않았습니까?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안에서 참 자유와 평안을 누리십시오.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에 큰 이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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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2/28/2017] 누가복음11:3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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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2/27/2017] 누가복음11:2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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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2/26/2017] 누가복음11: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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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2/25/2017] 누가복음1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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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 눅 11:9

우리는 항상 우리가 원하는 것을 받기를 원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가 기도하는 것마다 우리에게 주신다면 얼마나 환상적이겠습니까?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우리가 구하는 것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말씀합니까? 두 가지 조건만 맞아떨어진다면 그렇다고 말합니다. 첫째는, 강청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눅 11:8). 강청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밤 낮으로 쉬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눅 18:1, 7). 우리는 때로 기도했는데도 하나님께서 안 들어주셨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때, 정말로 강청했습니까? 밤 낮으로 쉬지 않고 포기하고 않고 기도한 후에도 안 들어주셨다고 불평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그저 몇 번 마음속으로 기도하고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불평하는 것입니까? 오늘 말씀에 보면 자고 있는 친구의 집에 한 밤중에 찾아가서 일어나기 힘들다고 불평하는 친구의 집 대문 밖에서 죽치고 부탁하는 모습을 강청한다고 표현합니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한 밤 중에 남의 집 밖에서 죽치고 앉아 부탁하는 정도로 하나님께 기도해본 적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잠도 못 주무시게 이른 새벽이나 늦은 밤에 예배당에서 밤 낮으로 부르짖어보셨습니까? 그래도 기도하는 것이 안 이루어지던가요?

두 번째 조건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자녀가 부모님께 무엇을 졸라도 그것이 자녀에게 해가 되는 것이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것을 더 구하지 못하게 하셨고, 바울에게도 눈을 낫게 해달라고 더 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것들이 그들에게 좋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언가 밤낮으로 강청하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나쁜 것이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시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것이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좋고 어떤 것이 나쁜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정답은 잘 모릅니다 입니다. 인간이 정말 우리에게 좋고 나쁜 것이 무언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러나, 기도하면 그것마저 알려주실 것입니다. 또 하나는, 우리가 잘 몰라도 적어도 단 한가지 것에서는 우리에게 항상 좋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입니다. 성령이란 선물은 우리가 골라서 달라고 부탁하는 선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주시기로 고르신 선물입니다. 이것은 언제든 궁극적으로 좋은 선물이니 마음 푹 놓고 마음대로 구해도 됩니다. 성령을 받기를 밤낮으로 강청하면, 이것은 반드시 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가장 중요한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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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2/24/2017] 누가복음10:2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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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되 자비를 배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 눅 10:37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 눅 10:41-42

우리의 문제는 무엇을 할지 모른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할지 알면서도 안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당연히 우리 이웃 중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고, 또 어떻게 하나님을 더 잘 섬길지도 압니다. 하지만, 지금 인생이 너무 바빠서 알면서도 못합니다. 눈 앞에 다른 일들을 먼저 처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늘 바쁘면서도 도대체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냈는지 모를 날들이 수북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주님은 너무 간결하게 말씀하십니다 – “가서 너도 그와 같이 니 할일을 지금 당장 해라.” 이 말을 지키기 위해서는 또한 선택을 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으니, 가장 중요한 것을 선택하고, 그 선택한 것을 가서 지금 당장 하라는 것입니다.

늘 기도 시간이 부족하고 늘 말씀을 적게 읽는다고 생각하고 삽니다. 그러면서도, 할 일은 어찌나 많은지…. 기도만 하고 말씀만 읽고 있을 수는 없잖아,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도와 말씀의 유익 중 하나는, 어떤 일이 꼭 해야 할 일인지 우리에게 알려준다는 것입니다. 열 시간을 일해도 그 열 시간이 다 유익하거나 결실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열 가지를 하면서도 정작 한 두 가지도 제대로 되는 경우가 흔하지 않습니다. 그저 헛 고생을 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기도와 말씀 생활로 시간을 많이 쓰면, 계획했던 열 가지를 다 못할 경우도 있겠으나, 그러나, 기도하고 말씀을 읽다 떠오른 한 두 가지 일을 하면 거기엔 열매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일을 하러 가기 전에 무엇을 할 지 인도하심을 먼저 받으십시오. 아니면, 인생은 늘 바쁘고 염려과 근심으로 가득차나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여행길 같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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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2/20/2017] 누가복음9:2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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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를 참으리요” – 눅 9:41

예수님은 참 많은 기적을 행하시고 또 많은 표적과 이적을 보이셨습니다. 기적과 표적의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고 그 분의 천국 복음에 대한 말씀을 경청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면 행할수록 사람들은 더 많은 기적만을 바랬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장님이면 아무리 많은 기적과 가르침을 보고 들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왜 정말 하나님을 믿고 교회에 나올까요? 혹시 불안과 (교회 안 가면 지옥갈까봐) 축복  (하나님 잘 믿고 보호받고 복 받으려고)이 정말 하나님을 믿는 이유는 아닐까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이미 더 이상 보여줄 수 없을 만큼 위대한 기적을 우리에게 보여주셨고, 더 이상 주실수 없을 만한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 분이 우리를 위해 죽으셔서 우리는 죄에서 구원받고 영생을 약속받았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에게 이 엄청난 기적과 선물은 별로 중요치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오늘 받아야 하는 복과 해결받고 싶은 문제에 집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믿음은 상황에 따라 언제든 약해지고 위협받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장님이라면, 우리 안에 성령님이 안 계시면, 수많은 기적과 많은 성경과 좋은 설교들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만을 바라고 믿고 싶은 것만 믿지, 진실로 주님이 하신 일에 눈물을 흘리며 감격하여 감사하지 못하고, 우리를 부르신 까닭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 가보다, 이미 우리를 위해 하신 그 위대한 일을 집중할 때, 지금 우리 삶을 보는 새로운 눈도 열릴 것입니다.

그나저나, 누가복음 9:41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화가 나신 겁니까 아니면 아이의 아버지에게 화가 나신 겁니까? 혹은 둘 다 에게 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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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2/19/2017] 누가복음 9: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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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구절에서, 제자들을 전도여행을 보내면서 예수님께서 요구하신 것은 하나였습니다.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구절에서, 5천명을 먹이려고 예수님이 요구하신 것도 하나였습니다. 너희들이 가진 것들을 다 내어 놓으라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따르려는 자들에게 요구하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매일 지고 주님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제자들이 사람들을 인근 마을로 보내 자기 먹을 것은 자기가 알아서 사먹게 하라고 권고한 것처럼 합리적이고 실용적으로 문제에 접근합니다. 그러나,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는 없습니다. 자기를 비우고, 자기 욕구를 부인하고 지기 싫은 의무들을 의지적으로 떠맡으며 주님을 향해 나아갈 때, 우리 삶을 통해서 주님의 기적과 영광이 일어납니다. 심지어, 매일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따르는 삶은 정말 만만치가 않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만 빛이 있고 생명이 있기에 그 길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기 안에 어둠을 발견한 모든 사람들은, 힘들어도 그 빛을 향해 나아가고자 할 것입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둠 속에 살고 있을뿐만 아니라, 어둠에 장님처럼 익숙해져서, 빛이 비추어도 자기 안에 어둠도 그리스도의 환한 빛도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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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2/16/2017] 누가복음 8: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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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구절은 유명한 거라사 지방의 군대 (Legion) 귀신들린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한국말 군대라고 번역된 Legion 이란 단어는 로마의 가장 큰 군대 단위로 적게는 3천명 많게는 5천명 이상 되는 군부대를 말합니다. 즉, 귀신들 수 천 마리가 이 사람의 몸에 들어가서 이 사람을 해롭게 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공포영화에서 귀신이나 악귀들이 여러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봅니다. 하지만, 이런 영화들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경 전체를 다 뒤져봐도 귀신이나 악귀가 사람을 죽였다는 기사를 단 한 곳도 없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몇 천명의 귀신들이 달라 붙었어도, 이 거라사 지방의 한 사람에게 해를 입혔을지언정 그를 죽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귀신 부대가 많은 돼지 무리로 들어가기를 예수님으로부터 허락 받자, 이들은 곧바로 이 많은 돼지들을 모두 몰살시켰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생명을 죽이는 것이었고 그래서 수 많은 돼지들을 단 번에 죽였지만, 그래도 그들은 단 한 사람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죽일 수 없었습니다.

인간은 동물과 다릅니다. 인간은 창조주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특별한 존재입니다. 물론 우리도 온갖 이 세상의 이유로 (사고와 질병과 전쟁 같은) 죽지만, 그것은 인간이 타락하여 신성을 잃고 또 타락한 인간이 이 세상을 타락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타락한 세상에서 이 세상의 방식으로는 죽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은 어떤 영적인 존재에게도 인간을 죽일 권리를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니, 공포영화보고 잠 못 드는 일이 없으셔도 됩니다). 비록 신성을 잃었지만 창조물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모든 인간은 창조주에게 특별합니다. 오직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다시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께 연결되면, 인간을 아주 많고 놀라운 일들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존재입니다. 마치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가 열매를 맺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목표는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멋진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나무에서 떨어진 가지에 멋진 장식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휘황찬 보석을 걸어놓고 별 짓을 다 해 봤자, 나무에서 떨어진 가지는 여전히 죽은 가지일 뿐입니다. 우리 인생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창조주 하나님과 다시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다시 우리는 열매 맺는 가지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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